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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리루]

리치님(@richi0415) 작품

 

 

숨막히던 한낮의 더위도 잠깐은 물러가서일까, 여름밤은 청춘의 한 시절처럼 괜시리 사람의 마음을 낭만으로 물들인다. 순간순간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어둡지만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어디로든 떠나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기분이 들었고, 그렇기에 여름밤의 축제는 보다 특별한 날처럼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 벌써 시작했잖아.”
“그러네, 어쩐지 노랫소리가 안 들린다 했는데.”

준비할 때만 해도 까마득히 느껴지던 문화제는 어느덧 마지막날 밤을 맞이하여 끝나가고 있었다. 리루카와 이치고가 제과제빵부의 물품을 모두 정리했을 땐 이미 밤 10시가 넘어 축제의 피날레인 불꽃놀이가 새까만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서둘러서 움직였는데도 결국은 못 맞췄네. 이치고는 하늘에 쏘아올려진 불꽃을 보며 못내 아쉬워했다. 

제과제빵부장인 리루카는 원래라면 축제기간동안 계속 부실을 지키면서 축제용 디저트를 파느라 정신없었겠지만, 첫날이야 이치고도 사정이 있어서 집에 빨리 돌아가야하니 그렇다쳐도 마지막 둘째날마저 남친이랑 문화제도 못 즐기는 게 말이 되냐며 두 사람의 연애에 본인들보다 더 적극적인 부원들이 반강제로 리루카를 제과제빵부실에 놀러온 이치고의 옆으로 쫓아내는 바람에 오늘 하루는 문화제를 즐길 수 있었다. 덕분에 다른 동아리에서 하는 부스들도 하나씩 구경해보며 축제는 만끽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부원들이 뒷정리까지 다 하는 건 부장으로서 용납할 수 없었는지 그럼 뒷정리라도 우리들이 할 테니 너희는 공연이라도 보러 가라고, 이번에는 리루카가 부원들을 억지로 보내는 탓에 둘이서만 사이좋게 뒷정리를 하게 된 셈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리루카는 제 예상과 달리 시간을 못 맞췄다며 아쉬워하는 기색도 짜증을 내려는 기색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별로. 우리 부실에서도 잘만 보이는 걸.”
“확실히 여기서도 잘 보이긴 하는데, 너라면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기분이 다르다고 할 줄 알았어.”

창가 앞에 서 있는 리루카의 옆으로 한 발짝 다가서니 그 말대로 밤하늘에 탕탕 터지는 폭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반짝반짝 빛나는 하늘은 마치 꽃이 만발한 화원처럼 찬연하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 단 둘이 있는 곳에서 보는 만큼 특별하진 않잖아.” 

화드득 화드득 불꽃이 부서지며 사라져가는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한데 어우러져 귓가를 어지럽히는데도, 수줍음이 담긴 목소리는 또렷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옆얼굴은 불꽃이 비춰져, 어두운 교실 속에서도 발갛게 물든 것을 알 수 있다. 문득, 뒷정리만큼은 우리들이 하겠다며 고집을 부리던 좀전의 그가 떠올랐고 이치고는 안쪽부터 피어나는 몽글몽글한 감정에 덩달아 얼굴이 화끈거려왔다. 

“뭐야, 분명히 들었으면서 사람 민망하게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반쯤은 무의식으로 내뱉은 그 말이 금세 부끄러워졌던 리루카가 자길 한층 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 들게 만들 셈인지 조용하기만 한 이치고에게 평소처럼 화를 내려는 찰나. 열기가 담긴 숨결이 맞닿고 부드럽게 겹쳐졌다. 하지만 살짝살짝 입술을 깨물고 혀를 내밀어 핥을뿐 리루카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인지 그 이상은 들어오지 않는다.

놀라서 반사적으로 감은 눈을 천천히 떠보면 불꽃을 비추는 갈색 눈동자가 사랑스럽다는 듯 휘어져 있어 또 다시 두근거렸다. 이어 이쪽으로 숙인 몸을 지탱하느라 제가 앉아있는 의자에 놓인 커다란 손을 보았다. 한창 축제를 즐기고 있을 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여 붙잡지 못했지만 사실은 줄곧 잡고 싶었던 그 손을.

노크를 하듯 그 손을 톡 건드니 단단한 마디마디가 조심스레 작은 손에 포개져왔다. 동시에 살짝 벌어진 입가로 그의 혀가 들어왔고 가느다란 빛줄기 하나도 새어들어갈 수 없을만큼 두 입술이 꼭 맞붙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에선 리루카와 자신들이 함께 만든 회심의 작품이라며 부원들이 줬던 티라미스의 단맛이 났다. 한참 전에 먹었기에 조금의 잔재도 남아있지 않을텐데, 서로의 혀가 감싸지거나 그의 입 천장을 간지럽힐 때마다 달콤함이 퍼져 나와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아…”

마지막 축포인지 방금전보다 2배는 더 커다란 불꽃이 터지면서 제법 큰 소리가 난 탓에 조금 놀란 리루카가 입술을 떼며 티라미스 같은 입맞춤은 끝이 났다. 

봄을 닮은 눈동자에 그리고 아마 자신의 눈동자에도 일렁이고 있을 여름의 마지막 불꽃이 서서히 부서져 사라지는 모습을, 우리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결국 마지막 불꽃은 제대로 못 봤네.”
“…누구 때문인데.”
“에이, 그래도 너도 허락해줬…아파!”

한쪽 볼을 야무지게도 꼬집는 손길에 이치고가 아프다고 오만상을 찌푸리면 그 얼굴이 웃겼는지 풋, 리루카가 웃음을 터뜨렸다. 명랑한 웃음소리와 제 품에 기대는 온기는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리루카.” 
“응?”
“다음 여름도 함께 있어줘.”
“…당연한 소리를 무게 잡으면서 말하지 말아줄래?”

저를 흘겨보며 말하지만 새초롬한 얼굴은 여전히 붉어서, 이번에는 이치고가 웃음을 터뜨렸고 곧바로 왜 웃냐며 발끈하는 리루카의 목소리가 조용한 교실 안을 울린다. 잊지 못할 추억으로 물든 축제도 여름밤도 저물어가지만 두 사람의 여름엔 몇 번이고 초록빛이 여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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