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河真님(@Dand3110N) 작품
축제데이트
조용히 길 위에 서 있으면 천천히 세상을 땅거미가 덮어갔다. 하나둘 서로의 짝을 찾아 걸어 다니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노점들이 붉고 노란 등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언제쯤 오려나. 오랜만에 휴일을 맞춘 오늘. 아직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심장이 떨려 한참 일찍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능하면 아이젠 대장의 눈에 란기쿠가 안 띄게끔 조심하겠지만, 오늘은 란기쿠가 먼저 시간을 맞춰 만나자고 한 날이니까. 란기쿠가 나를 바라보며, 오늘도 정말 안 되냐고. 간만에 소울 소사이어티에 큰 여름 축제가 열리는 건데, 그리 말하며 아쉬워 하는 모습을 보고도 매정히 넘길 정도의 성격은 되지 못했다. 한 발짝 대로에서 벗어나 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느새 인파가 많이 늘어 길을 덮었다. 언제 올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개를 돌려 길 끝을 바라보면 보이는 익숙한 제 소꿉친구의 금발. 저 멀리에서도 란기쿠는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긴! 미안해. 많이 기다렸어?"
"그리 안 기다렸는데, 그 옷은 뭐꼬? 유카타?"
"아무래도 이런 축제에는 유카타가 어울리니까. 어때, 잘 어울려?"
"……. 잘 어울리네."
"그게 뭐야. 조금 더 제대로 된 감상을 주지. 아무튼 됐어. 이제 갈까, 긴. 제대로 안 따라와서 인파에 휩쓸려도 몰라!"
"이런, 천천히 가그라, 란기쿠."
검디검은 사패장과는 달리 붉은 천에 하얀 꽃무늬가 새겨진 유카타. 순간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해주면 믿을까. 어깨를 으쓱하며 여상하게 말하면 작은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그래도 지금 솔직하게 말할 순 없으니까. 한발 앞서 축제가 한창인 거리로 들어가는 그의 뒤를 따랐다. 세상이 오색빛으로 물들어도 오로지 제 시선을 사로잡는 색은 하나 밖에 없으니 놓칠 염려는 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이리저리 신나서 돌아다니는 란기쿠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저 작은 웃음이 새어 나온다. 노점을 걸어 다니고 있으면 예상했던 대로 란기쿠는 온갖 것에 시선이 팔려 사이사이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다. 사과사탕을 보고 맛있겠다며 잡으려는 것을 말리고, 솜사탕 하나를 사서 둘이 나누어 먹기도 하고. 그 와중에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했다면서 제 손을 잡아 이끌었다. 이렇게 있으니 루콘가에 살던 때가 생각나는걸.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그때를 즐길 수 있었던 시절. 묘한 추억에 젖어 란기쿠의 뒤를 따르면 가면들을 걸어놓고 파는 노점이 있었다.
"이거 어때? 긴에게 어울리지 않아?"
"니 지금 내보고 여우 닮았다 그러는 기지."
"뭐 어때. 축제잖아, 긴. 여름 축제라면 이런 거 하나 정도 꼭 해야 한다고."
"참말로..."
란기쿠는 개중에서 하얀색 여우 가면을 빼 들어서 제 얼굴과 비교를 하곤, 만족했다는 듯이 냅다 계산을 해버렸다. 이거 하나 때문에 그렇게 급하게 노점으로 향한 건가. 이런 가면 정도, 몇 개든 란기쿠가 원하면 써줄 텐데. 기대가 가득 담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보곤, 하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에 적당히 걸쳤다.
"완전히 써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라믄 앞이 잘 안 보이잖어. 안 되제."
"아쉽네……."
아쉽다 말하는 사람이 저리 싱글벙글 웃고 있던가. 결국 피식 웃음을 흘리며, 란기쿠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 단순히 지금 사람이 많으니까. 잡은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괜히 다른 쪽으로 생각이 이어지려는 것을 억지로 차단했다. 옆을 보면 안 그대로 예쁜 얼굴이 노점의 등불빛을 받아 평소보다 화사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래,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순간적으로 바랄 만큼. 란기쿠의 손을 꼭 잡은 채 걸으며, 요요 낚시도 해보고 다트 같은 것도 몇 번 던지기도 하며 축제를 만끽하고 있으면 저 어드메에 히나모리 모모와 이즈루가 있었다. 히나모리 부대장이 저렇게 둘만 다닐 성격이었나? 무언가 찝찝함에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 때, 란기쿠가 제 손을 먼저 놓아버렸다.
"아, 긴! 나 잠깐 다녀올게!"
제게 손을 흔들고 히나모리 부대장에게 달려가는 란기쿠. 아는 얼굴을 만났으니 이야기라도 나눌 셈일까. 제 손에 남은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쉬이 잊히지 않아, 몇 번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곤 이즈루의 옆으로 향했다. 무엇을 하고 있나, 뒤에서 들여다보면 참으로 열심히도 종이 뜰채로 금붕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즈루, 니 뭣 허냐?"
"이치마루 대장님! 그……. 금붕어 낚시를. 이치마루 대장님은 마츠모토 부대장님이랑 돌아다니시는 중인가요?"
"뭐, 글체. 낚시는 잘 되어 가나?"
"애석하게도 제대로 안 잡히네요 이게."
"흐음……. 그래? 열심히 해라."
"네!"
기운차게 말하는 이즈루의 뒤에서 벗어나는 듯하다, 막 이즈루가 잡으려 할 때쯤에 실수인 척 툭, 건드렸다. 그 순간 종이 뜰채를 찢고 도망치는 금붕어 한 마리. 거의 다 잡았는데 놓쳤다며 눈에 띄게 아쉬워하는 이즈루를 보고 웃고 있으면 언제 이야기가 다 끝난 건지, 란기쿠가 제 등을 세게 때렸다.
"긴!!"
"아, 알았다, 알았어. 하모, 내가 한 마리 낚아주면 되겠제. 이즈루, 줘 봐라."
"네? 잠깐, 대장님?"
손은 어릴 때부터 뭐 그리 매워선. 작게 투덜거리며 이즈루의 손에 들린 종이 뜰채를 휙 가져가선 물 안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축제고 이런 장난은 칠 수 있지 않나. 곶감으로 장난 안 친 게 어딘데. 눈을 가늘게 뜨고 종이 뜰채를 빤히 바라보다, 딱 위로 금붕어가 올라온 순간. 바로 낚아채서 이즈루의 물동이에 넣어주었다. 이거면 되겠지. 놀란 눈으로 자신과 뜰채를 번갈아 바라보는 이즈루에게 샐쭉하니 웃어주곤 손을 뻗어 머리를 헝클였다.
"노는 건 적당히 해라. 여기에 돈 다 붓지 말고, 이즈루."
"아, 네! 마츠모토 부대장님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그랴."
쪼그리고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워 제게 인사하는 걸 적당히 손 흔들어 받아주었다. 내가 금붕어 하나 잡아준 게 그리도 좋을까. 아까 잡을 뻔한 걸 놓치게 만든 건 나인데. 몸을 돌려 란기쿠의 뒤를 따라가면, 아까 놓았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다시 손을 잡는 건 역시 안 되겠지. 이미 한 번 놓인 건 다시 붙잡기가 이렇게나 힘들다. 작은 아쉬움을 삼키며 그저 조금 내려온 소맷단을 만지작거렸다.
"역시 긴은 부대장이랑 사이가 좋네."
"니도 좋지 않나."
"그야 우리 대장님도 작고 귀엽지. 놀리는 재미가 있다니까."
"그니께 만날 니에게 글제. 대장 보고 귀엽다 카는 게 니 외에 있것냐."
"에이, 뭐 어때. 사실인걸. 특히 히나모리……."
"이치마루 대장과 마츠모토 군?"
이즈루를 지나쳐서 란기쿠와 즐겁게 이야기하며 걷고 있으면 지금 가장 만나기 싫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란기쿠를 보며 웃고 있던 얼굴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아이젠 소스케. 그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머리를 반쯤 가리고 있던 가면을 내려 제 얼굴을 가렸다. 하필. 아까 란기쿠를 막 만났을 때라면 괜찮았을 텐데, 하필 지금. 이리도 긴장이 풀려진 모습을 보았으니 필히 이 축제가 끝나고 나서 제게 무언가 말을 할 거다. 가면 속 얼굴을 팍 찡그리면서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에에, 반갑심더. 아이젠 대장."
"이치마루 대장. 마츠모토 군과 상당히 친해 보이는군."
"신경 쓸 거 없잖심꺼, 아이젠 대장."
"긴, 아이젠 대장님에게 그러면 안 되지."
"마츠모토 군, 나는 괜찮아. 이치마루 대장이 이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니까."
평소라면 넘겼을 저 대장님이라는 호칭이 거슬린다. 저 사람이 네 중요한 것을 빼앗아가고, 그렇게나 아프게 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너는 대장님이라 부를 수 있나. 게다가 너와 단둘이 함께하는 상황을 망쳐버렸는데. 아까 히나모리 부대장이 서있던 게 생각났다. 어쩐지. 이 사람에 그토록 의지하고 있는 히나모리 부대장이 이즈루와 함께 있을 리 없지. 함께 나온 모양이군. 비뚜름하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지는 갈 길 바쁘니께, 먼저 가겠슴더. 아쉽게도 선약이 있어서예."
"그런가. 아쉽군. 나중에 또 보도록 하지. 마츠모토 군도, 축제 재밌게 즐기도록 하게."
"들어가세요, 아이젠 대장님!"
제 어깨를 툭툭 치고는 그 뒤로 흐려지듯 사라졌다. 입술을 꾹 다물고 란기쿠의 손목을 잡아 앞으로, 그저 앞으로 이끌었다. 적어도 조금 더 오래 저 공간에 있기 싫었다. 란기쿠가 눈에 안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 하나를 위해 지금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 란기쿠의 손목을 꽉 잡고 한참을 걸으면, 다소 인기척이 드물어진 샛길 위에 서 있었다. 그제야 손목을 놓아주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아팠을까. 가면을 위로 들어 올리고 다소 미안한 표정으로 란기쿠를 향하면,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옅게 웃어주는 란기쿠가 있었다.
"긴. 아까 아이젠 대장님에겐 왜 그런 거야. 사이가 안 좋은 건 알지만, 그래도 축제잖아."
"암 것도 아니지라. 마, 그냥 노는 중에 저 얼굴을 봐서 글체."
"정말이지……. 나중에 해결되면 꼭 말해줘야 해. 나는 긴을 믿으니까."
"……. 그래. 꼭 말해주께. 그라믄 갈까. 이제 곧 불꽃놀이 할 테니까. 가장 기대했잖아."
"응. 그러면 잘 보이는 자리로 가자, 긴."
더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 네가 고맙다. 명백히 이상해 보이는 태도를 취하는데도 나를 믿어준다 말하는 네가 있으니까, 나는 그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들어갈 수 있다. 아무리 그를 이해한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네가 있으니까. 이왕 샛길까지 나온 것, 적당히 하늘이 잘 보이는 공터를 찾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축제가 한창인 거리는 사람이 많으니까 불꽃놀이를 보기 쉽지 않겠지. 게다가 그곳으로 들어가면 아이젠 소스케가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나와 란기쿠를 위해 남겨두고 싶었다. 간신히 하늘이 잘 보이는 공터를 찾아, 적당하게 맨바닥에 앉았다. 서로 조용히 하늘만 올려다본 지 얼마나 지났을까, 머지않아 하늘에 아름다운 불꽃이 수놓았다.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다양한 색이 하늘에 차오르고 흩어지고, 이내 사라져간다. 그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본 네 모습은 평소보다 더 아름다워서. 나는 하늘보다 네 얼굴을 눈에 담았다. 하늘에 집중하는 얼굴도, 자신이 좋아하는 색이 나왔다며 즐거워하는 얼굴도, 나를 바라보며 그저 눈꼬리 휘게 웃으며 활짝 핀 얼굴도. 그 다양한 색에 넋을 놓았을 때, 불쑥 제게 손가락이 들이 밀어졌다.
"이제는 또 어디론가 슬쩍 사라지지 마. 약속, 어때?"
"하이고……. 니에겐 못 이기것네. 그래서 이리 따로 만나자고 한 기가."
새끼손가락을 들어 란기쿠의 새끼손가락에 걸었다. 유비키리겐만 하리센본. 어기면 주먹 만 대. 바늘 천 개 먹기.
"그래, 약속."